바다를 메운 나라들 — 네덜란드 폴더 700년과 한국 간척의 갈림길
네덜란드에는 이런 말이 있다. “신은 세상을 만들었지만, 네덜란드는 네덜란드인이 만들었다.”
과장이 아니다. 제방과 사구, 펌프가 없다면 이 나라 국토의 약 65%가 만조 때 물에 잠긴다. 현재 국토의 26%가 평균 해수면보다 낮다. 20세기 간척으로만 약 1,650km²의 땅이 새로 생겼다.
그런데 이 나라가 1970년대부터 간척을 접기 시작했다. 2003년에는 20세기 최대 규모로 계획됐던 폴더 사업을 공식 취소했다. 700년을 이어 온 국가적 사업을 왜 스스로 멈췄을까. 이 질문은 한국 갯벌 논쟁과 곧장 이어진다.
풍차에서 증기기관까지 — 기술이 야망을 결정했다
네덜란드 간척의 역사는 기술사와 정확히 겹친다.
14세기, 도시 인근에서 소규모 간척이 시작됐다. 물을 퍼내는 힘이 사람과 가축뿐이던 시절이라 규모에 한계가 있었다. 15세기에 풍차가 배수에 투입되면서 판이 바뀐다. 바람이 무한한 동력이 되자 호수 하나를 통째로 말리는 일이 가능해졌고, 여기서 폴더(polder)라는 경관이 태어난다. 1609~1612년 조성된 베임스터르(Beemster) 폴더가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1787년부터는 증기 펌프가 풍차를 대체한다. 날씨에 좌우되지 않는 동력이 생기자 속도와 규모가 다시 도약했고, 1852년 하를레메르메이르 폴더 — 지금 스히폴 공항이 있는 그 땅 — 가 완성된다.
그리고 20세기, 자위더르제이 사업(Zuiderzee Works)이 1919년 시작된다. 내해를 막아 담수호로 바꾸고 그 바닥을 육지로 만드는 국가 프로젝트였다. 플레보폴더는 1956~1966년에 걸쳐 조성됐다. 지도에서 네덜란드 중앙부의 반듯한 사각형 땅이 바로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서 놓치기 쉬운 것이 제도다. 네덜란드의 물관리위원회(water board)는 홍수 재해 이후 만들어진 조직으로, 이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민주적 제도로 꼽힌다. 간척은 토목공사이기 이전에, 물을 함께 관리하기 위해 세금을 걷고 규칙을 정하는 거버넌스의 산물이었다.

1970년대, 계산이 바뀌었다
전환은 갑자기 오지 않았다. 1970년대에 이르러 세 가지가 동시에 드러났다.
첫째, 필요가 사라졌다. 간척의 원래 명분은 식량과 농지였다. 그런데 농업 생산성이 오르고 인구 증가가 둔화되자, 새 농지를 만들 이유가 희박해졌다. 환경단체들은 추가 간척이 홍수 방어에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둘째, 땅이 가라앉았다. 폴더의 구조적 문제다. 물을 빼내면 이탄질 토양이 압축되고 산화돼 지반이 내려앉는다. 지반이 내려앉으면 더 세게 퍼내야 하고, 더 퍼내면 더 내려앉는다. 제방은 계속 높여야 하고 펌프는 영구히 돌아야 한다. 간척은 한 번의 공사가 아니라 무기한의 유지비 계약이었다.
셋째, 잃는 것의 값이 계산되기 시작했다. 갯벌과 하구 습지가 어업 생산과 철새, 수질 정화와 파랑 감쇠를 떠받친다는 사실이 정책 언어로 들어왔다. 예전에는 0으로 잡히던 항목에 값이 붙자 손익계산서가 뒤집혔다.
결과가 마커바르트(Markerwaard) 폴더의 운명이다. 1978년 완공을 목표로 계획됐던 이 사업은 수십 년의 논쟁 끝에 2003년 정책적으로 접혔고, 2006년 국가공간계획 「Nota Ruimte」로 공간계획상의 유보가 공식 소멸했다. 대신 네덜란드는 강에 공간을 돌려주는 방향으로 정책을 틀었다. 제방을 뒤로 물리고, 일부 폴더는 다시 물에 잠기게 두어 홍수를 받아내는 완충지로 쓴다. 막는 대신 자리를 내주는 전략이다.
한국 간척은 같은 길을 다른 속도로 갔다
한국의 대규모 간척은 시기가 다르다. 네덜란드가 브레이크를 밟기 시작한 1970~80년대에 한국은 가속 페달을 밟았다. 식량 자급과 산업용지 확보가 국가적 과제였고, 서남해안의 넓고 완만한 갯벌은 공학적으로 매력적인 대상이었다. 조차가 크고 경사가 완만하다는 것은 방조제 하나로 막을 수 있는 면적이 넓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경로는 네덜란드와 닮았다. 명분(식량), 기술(대형 토목), 국가 주도 추진. 다른 점은 시간 압축이다. 네덜란드가 700년에 걸쳐 축적한 규모의 변화를 한국은 수십 년 안에 겪었다. 그만큼 조정할 시간도 짧았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계산이 바뀌었다. 논쟁의 초점은 “만들어진 땅으로 무엇을 하는가”로 옮겨 갔다. 농지 수요는 예전 같지 않았고, 담수호 수질 관리가 새로운 난제로 떠올랐다. 여기에 없어진 갯벌이 무엇을 하던 곳이었는지가 정량적으로 밝혀졌다.
전환점이 2021년이다. 서천·고창·신안·보성순천 갯벌이 총 156,386ha(완충구역 105,303ha) 규모로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다. 등재 기준은 생물다양성 보전 관점의 (x)이었고, 대형저서동물 857종·저서규조류 375종·물새 118종 같은 수치가 근거로 제시됐다. 확장 등재도 2026년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불과 한 세대 전 “메워야 할 쓸모없는 땅”으로 불리던 곳이 국제사회가 보전을 요구하는 자산으로 지위가 뒤집힌 것이다.
되돌리는 일이 왜 그렇게 어려운가
두 나라 모두에서 확인되는 것은, 되돌리는 비용이 만드는 비용보다 결코 싸지 않다는 사실이다.
물리적으로도 그렇다. 방조제로 막힌 뒤 안쪽 퇴적 환경은 수십 년에 걸쳐 완전히 재편된다. 물길을 다시 튼다고 해서 예전 갯벌이 그대로 복원되지 않는다. 염습지 복원 연구는 교란의 성격과 정도에 따라 회복에 2~10년, 또는 그 이상이 걸린다고 보고한다.
탄소 측면에서는 더 비대칭적이다. 연안 습지는 수백~수천 년에 걸쳐 퇴적층에 탄소를 묻는다. 그런데 매립이나 배수로 그 퇴적층이 공기에 노출되면 축적된 탄소가 한꺼번에 산화돼 배출된다. 쌓는 데 수백 년, 잃는 데 수년이다.
사회적으로는 더 복잡하다. 만들어진 땅에는 이미 소유자와 생계, 지방재정과 정치적 약속이 얹혀 있다. 네덜란드에서도 폴더를 다시 물에 잠기게 하는 결정은 매번 지역과의 긴 협상을 거쳤다.
실무 적용 — 간척·복원 논쟁을 볼 때 확인할 것
- 유지비를 포함한 총비용인가 — 방조제와 배수 시설은 완공이 끝이 아니라 영구 유지 대상이다. 초기 공사비만 제시된 경제성 분석은 절반짜리다.
- 잃는 쪽의 값이 매겨졌는가 — 수산 생산, 파랑 감쇠에 따른 재해 저감, 수질 정화, 탄소 저장. 이 항목들이 0으로 잡혀 있다면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다.
- 지반침하가 반영됐는가 — 이탄질·연약 지반 매립지는 시간이 갈수록 유지비가 올라간다. 30년 뒤 시나리오가 있는지 본다.
- 복원 가역성을 물어본다 — “나중에 되돌리면 된다”는 전제는 대개 성립하지 않는다. 되돌리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사전에 명시했는지가 계획의 성숙도를 가른다.
- 용도 변경 이력을 추적한다 — 농지 명분으로 시작해 산업단지로 바뀌는 사례가 양국 모두에 있다. 최초 명분과 최종 용도가 다르다면, 그 사업의 실제 목적을 다시 물어야 한다.
네덜란드가 마커바르트를 취소한 것은 환경 감수성이 갑자기 좋아져서가 아니다. 손익계산서에 빠져 있던 항목이 채워졌기 때문이다. 간척 논쟁의 핵심은 언제나 그것이다. 무엇을 비용으로 세지 않기로 했는가.
본 글의 수치는 공개 자료 기준이며 조사 연도·주체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개별 사업의 경과와 계획은 관계 부처·지자체의 공식 발표를 확인해 주세요. 갯벌 현장에서의 채집·섭취·안전에 관해서는 해양수산부·국립공원공단 등 관계기관의 안내가 항상 우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