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 뒤 갯벌이 갈색으로 빛나는 이유 — 표면을 덮은 ‘보이지 않는 숲’, 저서미세조류
썰물이 빠진 갯벌 위를 걸어 본 사람은 표면이 균질한 잿빛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어떤 구역은 초콜릿빛이고, 어떤 구역은 햇빛을 받아 황갈색으로 은은하게 빛난다. 오래도록 이 색은 퇴적물의 광물 조성으로 설명되어 왔다. 그러나 표면 1밀리미터를 긁어 현미경 아래 놓으면 유리 상자처럼 생긴 규조류 수십만 개체가 미끄러지고 있다. 갯벌의 색은 대체로 광물이 아니라 생물의 색이다.
핵심 요약
- 썰물 때 갯벌 표면의 갈색·황갈색은 퇴적물 표층으로 이동해 온 저서미세조류(microphytobenthos, MPB), 특히 저서규조류가 만든 생물막(biofilm)에서 비롯된다.
- 이들은 갯벌의 주요 1차생산자로, 탁한 조간대에서는 수층 식물플랑크톤에 맞먹거나 그 이상을 생산한다고 보고된다.
- 규조류가 분비하는 세포외중합물질(EPS)은 퇴적물 입자를 서로 붙여 침식 저항을 높인다. 이른바 생물학적 퇴적물 안정화다.
- 많은 저서규조류는 조석·광주기에 맞춰 밀물 전 퇴적물 속으로 내려가는 수직 이동 리듬을 보이며, 이는 내인성 생체시계와 관련된 것으로 해석된다.
- 정량은 클로로필-a와 펄스진폭변조(PAM) 형광법이 표준에 가깝고, 최근에는 위성·드론 원격탐사로 생물막 분포를 넓게 잡으려는 시도가 이어진다.
갯벌의 색은 어디서 오는가
저서미세조류는 퇴적물 표층에 사는 단세포 광합성 생물을 통칭한다. 온대 갯벌에서는 규조류(Bacillariophyceae)가 우점하고, 남조류와 유글레나류가 함께 섞인다. 규조류가 띠는 황갈색은 푸코잔틴(fucoxanthin) 같은 카로티노이드 색소 때문이다. 이 색소가 엽록소의 초록빛을 가려 갯벌 특유의 갈색 톤을 만든다. 생물막이 조밀한 구역은 눈으로도 구분될 만큼 표면이 매끈해지고, 발자국을 찍으면 그 자리만 색이 달라진다.
활동 범위는 놀랄 만큼 얇다. 진흙질 퇴적물에서 빛이 유효하게 도달하는 깊이는 대개 밀리미터 이하이며, 광합성이 실제로 일어나는 층은 표면 수백 마이크로미터에 집중된다. 서식 방식도 갈린다. 진흙질에서는 스스로 미끄러져 이동하는 표니성(epipelic) 규조류가, 모래질에서는 모래알에 붙어 사는 표사성(epipsammic) 규조류가 우세하다. 앞의 무리는 활발히 오르내리고 뒤의 무리는 붙은 채로 색소를 조절해 광량 변화에 대응하는 경향이 있어, 같은 갯벌이라도 입도가 달라지면 생물막의 성격이 통째로 바뀐다.

먹이망의 바닥을 떠받치는 층
갯벌은 겉보기에 황량하지만 단위 면적당 생산성이 높은 생태계로 꼽히며, 그 생산의 상당 부분이 저서미세조류에서 나온다. 탁도가 높아 수층의 빛이 빈약한 하구 조간대에서는 썰물 때 대기에 노출된 표면이 오히려 더 좋은 광합성 무대가 된다. 하루 두 번, 물이 빠진 몇 시간이 이 생태계의 ‘낮’인 셈이다.
생산된 유기물은 여러 경로로 위쪽 영양단계에 전달된다. 갯지렁이류와 단각류, 고둥류 같은 퇴적물식자가 표층을 직접 훑고, 밀물에 재부유한 규조류는 이매패류의 여과섭식 경로로 들어간다. 그렇게 축적된 저서동물 생물량이 다시 도요물떼새의 먹이가 된다. 안정동위원소(δ13C·δ15N) 추적 연구들은 조간대 저서동물의 탄소 상당 부분이 육상 기원 유기물이나 식물플랑크톤이 아니라 저서미세조류에서 유래한다고 보고해 왔다. 다만 기여율은 편차가 크고, 먹이원의 동위원소 값이 겹치는 문제 때문에 정량 배분은 여전히 논쟁적이다.
여기에 미생물 고리가 얹힌다. 규조류가 내놓는 용존 유기물은 표층 세균의 기질이 되고 세균은 다시 섬모충과 선충의 먹이가 되며, 낮 동안의 광합성이 만드는 산소는 표면 몇 밀리미터의 산화·환원 미세 구배를 하루 주기로 밀고 당긴다.
퇴적물을 붙잡는 점액 — EPS와 생물학적 안정화
저서규조류의 두 번째 역할은 먹이가 아니라 토목에 가깝다. 표니성 규조류는 껍질에 난 봉선(raphe)을 따라 점액질을 내밀며 미끄러지는데, 이때 남는 것이 세포외중합물질(EPS)이다. 다당류가 주성분인 EPS는 퇴적물 입자를 서로 엮어 탄력 있는 매트를 만들고, 그 결과 퇴적물이 흐름에 쓸려 나가기 시작하는 임계 소류력이 높아진다. 생물막 발달 구역과 그렇지 않은 구역의 침식 저항이 뚜렷이 갈린다는 실험이 여러 갯벌에서 반복 확인되면서, 저서규조류는 대표적인 생태계 엔지니어로 다루어진다.
그러나 표면에서 안정화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조개가 파고들고 게가 굴을 뚫고 갯지렁이가 퇴적물을 삼켰다 뱉는 생물교란(bioturbation)은 반대 방향으로 작용해 표면을 다시 무르게 만든다. 실제 갯벌의 지형 안정성은 두 힘이 계절과 밀도에 따라 겨룬 결과이며, 이 상호작용을 퇴적역학 모형에 어떻게 넣을지는 아직 접근이 통일되지 않았다.

밀물이 오기 전에 내려간다 — 이동 리듬
표니성 규조류는 낮의 간조에 맞춰 표층으로 올라오고, 밀물이 밀려들기 전에 퇴적물 속으로 다시 내려간다. 이 리듬은 단순한 자극-반응이 아니다. 조석도 빛도 없는 일정 조건의 실험실로 옮겨 놓아도 한동안 리듬이 유지된다는 관찰이 오래전부터 보고되었고, 이는 조석 주기와 일주기가 함께 동조시킨 내인성 리듬을 시사한다.
왜 굳이 내려가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여럿 병존한다. 밀물에 씻겨 떠내려가는 것을 피한다, 노출기의 과도한 광량과 자외선을 피한다, 표층의 건조와 염분 급변을 피한다, 퇴적물 내부의 영양염을 취하러 간다. 어느 하나가 다른 것을 배제하지 않으며 종과 서식지에 따라 비중이 다를 가능성이 크다. 이 행동은 연구자에게 성가신 변수이기도 하다. 같은 지점에서 같은 날 채취해도 조석 위상에 따라 표층 색소량이 몇 배 차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재는가 — 색소, 형광, 그리고 원격탐사
가장 고전적인 지표는 퇴적물 표층의 클로로필-a 농도다. 코어를 얇게 잘라 유기용매로 추출한 뒤 HPLC로 정량하면 푸코잔틴 같은 표지 색소를 함께 분리해 규조류와 남조류의 상대적 기여까지 추정할 수 있다. 생산량 자체는 산소 미세전극으로 표층 프로파일을 훑거나 밀폐 챔버의 기체 변화를 추적해 잰다. PAM 형광법은 시료를 파괴하지 않고 현장에서 광합성 효율을 읽을 수 있어 널리 쓰이지만, 표면에 올라와 있는 세포만 본다는 한계가 있다. 측정 중 세포가 오르내리면 신호가 광합성 반응 때문인지 이동 때문인지 구분하기 어려워, 이를 분리하려는 보정 절차가 계속 논의되어 왔다.
최근의 흐름은 이 얇은 층을 넓게 보려는 원격탐사다. 생물막이 발달한 퇴적물은 식생처럼 근적외 반사가 높아지므로, 위성 다분광 영상의 식생지수나 초분광 자료의 흡수 특징으로 밀도를 추정할 수 있다. 드론은 조석 창이 짧은 갯벌에서 원하는 시각에 반복 촬영이 가능해 유럽의 와덴해와 한국 서해안 갯벌에서 두루 시도되어 왔다. 다만 퇴적물 함수율과 표면 거칠기, 잔존 수막, 그리고 앞서 말한 수직 이동 리듬이 모두 반사 스펙트럼을 흔든다. 위성 지수와 실측 클로로필-a 사이의 회귀식이 지역마다 달라진다는 보고가 있어, 전 지구적으로 통용되는 단일 환산식은 아직 없다고 보는 편이 안전하다.
남은 질문들
저서미세조류가 갯벌 생산의 바닥을 이룬다는 큰 그림에는 이견이 적지만 세부는 열려 있다. 생산된 유기물 중 얼마가 그 자리에서 소비되고 얼마가 조류를 타고 인접 해역으로 빠져나가는지는 지역마다 답이 다르다. 수온 상승과 입도 변화가 군집을 어느 방향으로 밀지도 예측 단계에 머물러 있고, 장기 모니터링 자료가 축적된 갯벌은 많지 않다. 발밑 1밀리미터를 본다는 것은 결국 갯벌 전체를 다시 보는 일이다. 물이 빠진 몇 시간 동안, 육안으로는 그저 진흙인 표면 위에서 하나의 숲이 하루치 광합성을 마치고 다시 어둠 속으로 내려간다.
참고: 저서미세조류의 1차생산을 다룬 하구 생태계 종설, EPS와 퇴적물 생물안정화 실험 연구, 저서규조류의 내인성 이동 리듬에 관한 고전 연구, 최근의 갯벌 생물막 원격탐사 문헌을 참조해 정리했다. 값은 지역·계절·조사법에 따라 편차가 크다.
썸네일 사진: Prof. Gordon T. Taylor, Stony Brook University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작성 · Inkmarsh 편집팀 — 갯벌 생태·보전 연구를 논문과 1차 자료 기준으로 해설합니다. 본 콘텐츠는 과학 정보·해설 목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