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순천만의 갯벌과 갈대밭이 펼쳐진 풍경

전봇대를 뽑았더니 두루미가 왔다 — 순천만이 흑두루미 월동지가 된 이유

참고자료 · 자료 시점
핵심 출처 — IUCN 적색목록 ‘Hooded crane’ — 성숙개체 추정, CITES 부속서 I 등재 현황,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 천연기념물 제228호 흑두루미 지정 연혁, 람사르협약 등록습지 ‘순천만·보성갯벌'(2006년 등록), UNESCO 세계유산 ‘Getbol, Korean Tidal Flats'(2021년 등재 조서)
자료 시점 — 1970년 천연기념물 지정 ~ 2025년 개체수 추정
정리 — Inkmarsh 편집팀 · 2026.7

겨울 순천만에는 새벽마다 같은 소리가 난다. 갯벌 위 잠자리에서 논으로 옮겨 가는 흑두루미 무리의 울음이다. 30년 전만 해도 이 소리는 없었다. 순천만에서 흑두루미가 확인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이고, 그때 세어진 숫자는 두 자릿수였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계절에 따라 수천 마리 단위가 관찰되는 국내 최대 월동지가 됐다.

이 변화는 저절로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변화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먼저 흑두루미라는 종이 얼마나 아슬아슬한 상태에 놓여 있는지부터 봐야 한다.

한 곳에 8할이 몰려 있다는 위험

흑두루미(Grus monacha, Temminck 1835)는 몸길이 약 96cm로 두루미과 중에서는 작은 축에 든다. 몸은 암회색이고 머리와 목이 희어서, 검은 두건을 쓴 것처럼 보인다는 뜻의 영어명 hooded crane이 여기서 나왔다. 시베리아·만주·몽골의 습지에서 번식하고, 한국·중국·일본 남부로 내려와 겨울을 난다.

IUCN 적색목록은 이 종을 취약(VU)으로 분류하고 있고, CITES 부속서 I에도 올라 있다. 2025년 시점의 성숙 개체 추정치는 약 9,750~13,000마리다. 한국에서는 1970년 10월 30일 천연기념물 제228호로 지정됐고, 멸종위기 야생생물 II급이기도 하다.

문제는 분포가 아니라 편중이다. 이 종은 세계 개체군의 80% 이상이 일본 규슈 남단의 이즈미(出水) 한 곳에서 월동한다. 보전생물학에서 이런 구조는 최악에 가깝다. 개체수가 아무리 많아 보여도, 그 하나의 월동지에서 조류인플루엔자가 돌거나 먹이 공급이 끊기면 종 전체가 한 번에 타격을 입는다. 실제로 이즈미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가 확인될 때마다 국제 조류보전 단체들이 “분산 월동지를 늘려야 한다”고 반복해 경고해 온 이유가 이것이다.

순천만이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이곳은 단순히 “새가 많이 오는 관광지”가 아니라, 한 종의 위험 분산 포트폴리오에서 두 번째 자산에 해당한다.

무리 지어 하늘을 나는 두루미 떼
무리 지어 이동하는 두루미(Grus grus). 흑두루미와는 다른 종이지만, 두루미과 새들이 무리 단위로 이동하고 한 장소에 집중하는 습성은 공통이다. 2025년 벨기에 오트팡뉴에서 촬영. 사진: DimiTalen / Wikimedia Commons (CC0)

흑두루미가 필요한 것은 갯벌만이 아니다

순천만은 순천시와 보성군에 걸친 남해안의 만이다. 남북 약 30km, 동서 약 22km 규모에 해안선은 약 58.7km. 갯벌 면적은 약 2,200ha 규모로 집계되며, 갈대 군락 면적은 자료마다 230ha에서 5.4km²(540ha)까지 편차가 크다. 경계를 어디까지 잡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수치이니, 정확한 값이 필요하면 순천시나 국립공원공단의 최신 고시를 확인하는 편이 낫다.

지정 이력은 촘촘하다. 2006년 1월 20일 람사르 습지로 등록됐는데, 이는 국내 연안습지 중 최초였다. 2008년 6월 명승 제41호, 2018년 순천시 전역이 생물권보전지역, 그리고 2021년 7월 제44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의 갯벌(Getbol, Korean Tidal Flats)’ 구성자산의 하나로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다. 순천만에서 관찰된 조류는 140종이 넘는다.

그런데 흑두루미의 하루 일과를 보면, 갯벌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이 새는 밤에는 포식자를 피해 물이 얕게 깔린 갯벌이나 하천 바닥에서 잠을 자고, 낮에는 논으로 나가 먹는다. 낙곡, 우렁이, 미꾸라지 같은 것이 겨울 식단이다. 즉 흑두루미가 정착하려면 잠자리(갯벌)와 식당(농경지)이 나란히 붙어 있어야 하고, 그 사이를 안전하게 오갈 수 있어야 한다.

걷어낸 것, 채운 것

순천만 월동지 관리의 상징이 된 조치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전봇대와 전선 제거다. 두루미과 새들은 몸이 크고 날개폭이 넓은 데다 저공으로 활공해 착지하기 때문에, 논 위를 가로지르는 전선이 치명적인 충돌 위험이 된다. 순천시가 2000년대 후반 월동지 배후 농경지의 전주를 대거 걷어낸 사업은 국내 서식지 관리 사례로 널리 인용된다. 다만 제거 개수는 자료마다 200개대 후반으로 조금씩 다르게 전해지므로, 정확한 수치는 순천시 공식 자료로 확인하기를 권한다. 중요한 것은 개수가 아니라 “새의 눈높이에서 장애물을 없앤다”는 발상 자체가 실제로 개체수 반응을 이끌어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무논(겨울철 물을 대는 논) 조성과 낙곡 남기기다. 추수 후 논을 갈아엎지 않고 볏짚과 낙곡을 남겨 두거나, 일부 논에 얕게 물을 대 두면 먹이터와 안전한 휴식처가 동시에 생긴다. 여기에 월동기 출입 통제와 무인 감시, 친환경 농법 전환에 대한 인센티브가 결합됐다. 요컨대 보전의 실행 단위가 ‘보호구역’이 아니라 ‘농민의 영농 방식’이었다는 것이 순천만 사례의 핵심이다.

이 접근이 중요한 이유는 비용 구조 때문이다. 갯벌 자체를 보호구역으로 묶는 일은 상대적으로 쉽다. 어차피 사유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흑두루미가 낮 시간을 보내는 논은 사유지이고, 거기서 농사를 짓는 사람의 생계가 걸려 있다. 무논을 만들고 낙곡을 남기는 일은 농민에게 손실이다. 따라서 이 조치가 지속되려면 손실을 누가 어떻게 보전하느냐가 매년 풀려야 하고, 그것이 곧 지자체 예산과 농가 계약의 문제가 된다. 순천만 사례가 다른 지역에 그대로 복제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술이 아니라 재정과 합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반대급부도 있었다. 흑두루미가 오는 갯벌이라는 사실 자체가 지역 브랜드가 되면서 생태관광 수요가 생겼고, 친환경 농법으로 전환한 쌀에 프리미엄이 붙었다. 보전이 지역경제의 비용이 아니라 자산 쪽으로 넘어간 드문 사례다. 다만 관광객 증가는 그 자체로 교란 압력이기도 해서, 탐방로 통제와 월동기 접근 제한이 함께 강화돼 왔다.

개체수 추이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말하는 편이 정확하다. 1990년대 후반 두 자릿수에서 시작해 2010년대에 1,000마리대, 2020년대 들어 수천 마리대가 보고됐고, 일본 이즈미에서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한 겨울에는 순천만 관찰 수가 크게 뛴 것으로 보도됐다. 다만 연도별 최대치는 조사 주체와 조사일에 따라 달라지므로, 특정 숫자를 인용하려면 순천시·국립생물자원관의 해당 연도 동시센서스 결과를 원자료로 확인해야 한다.

직접 보러 가는 법 — 그리고 지켜야 할 선

  • 시기 — 흑두루미 월동기는 대체로 늦가을부터 이듬해 초봄까지다. 갈대가 마르고 관광객이 줄어드는 12~2월이 관찰 밀도가 높다.
  • 시간대 — 새벽 갯벌 잠자리에서 논으로 나가는 시간, 해질 무렵 논에서 갯벌로 돌아오는 시간이 무리 비행을 볼 수 있는 두 번의 창이다. 한낮에는 논에 흩어져 있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 거리 — 두루미과는 경계심이 매우 강하다. 접근해서 날려 보내는 순간 그 새는 겨울 내내 아껴야 할 에너지를 소모한다. 차 안이나 탐조대에서 망원경으로 보는 것이 원칙이고, 논두렁으로 걸어 들어가지 않는다.
  • 소리와 색 — 급격한 움직임, 밝은 형광색 옷, 드론은 모두 피한다. 월동지 상공 드론 비행은 지역에 따라 별도 규제 대상이다.
  • 확인 습관 — 탐방로 개방 구간과 차량 통제는 월동기마다 달라진다. 방문 전 순천만습지 안내와 국가유산·국립공원 공지를 확인하고 출발하는 것이 헛걸음을 줄인다.

순천만이 알려주는 것은 낭만적인 교훈이 아니다. 서식지 관리는 “건드리지 않고 두기”가 아니라, 어떤 구조물을 걷어내고 어떤 자원을 남길지 사람이 매년 결정하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전봇대를 뽑는 결정은 자연이 내리지 않는다.

본 글의 개체수·면적 수치는 공개 자료 기준이며 조사 연도와 주체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인용 시 원자료를 확인해 주세요. 탐조·현장 방문, 갯벌 출입과 안전에 관해서는 순천시·국립공원공단 등 관계기관의 현장 안내와 통제 지침이 항상 우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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